그대 이름은 소녀, '걸 그룹의 조건'

최근 걸 그룹 세계의 키워드는 ‘소녀’다. 찰랑이는 긴 머리카락과 짧은 스커트, 운동화 차림의 소녀들은 그 어느 때보다 애정의 눈길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중에서도레드벨벳과러블리즈,여자친구, 그리고 최근 데뷔한 오마이걸은 소녀라는 단어에 숨어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각자의 방식으로 펼쳐 보이는 팀들이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의상부터 뮤직비디오, 멤버들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소녀 콘셉트의 조건이라 할 만한 요소들을 골라 탐구해보았다. 지금 가장 사랑스러운 소녀들의 모든 것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1. 스쿨룩 같은 의상

소녀 콘셉트의 기본은 교복이다. 꼭 교복과 똑같지 않더라도 플리츠 스커트는 반드시 착용하며, 여기에 블라우스나 맨투맨 티셔츠 등을 매치해서 청순하면서도 발랄한 이미지를 강조한다. ‘소녀’라는 단어에서 누구나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모습.

레드벨벳: 정석적인 스쿨룩은 아니다. 하지만 짧은 플리츠 스커트와 운동화는 빠지지 않고, 그 위에 품이 넉넉한 맨투맨이나 스포티한 느낌의 니트 등을 입는다. 중요한 것은 같은 디자인의 의상이라도 멤버별로 색깔과 무늬만큼은 다 다르다는 점이다. 그래서 레드벨벳이 의상을 통해 보여주려 하는 것은 소녀이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평범한 소녀가 아니다. 다른 세상에 사는것 같은, 자신들만의 개성이 뚜렷한 여자아이다. ‘행복’ 활동 당시의 아랫부분만 염색한 머리카락, ‘Ice Cream Cake’ 활동 초반의 금발 또한 그런 이미지를 그려내기 위한 것이다.

러블리즈: 여고생의 교복에 가장 가깝다. ‘Candy Jelly Love’ 때의 의상은 실제로 있는 교복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단정한 재킷과 너무 짧지 않은 길이의 스커트, 블라우스, 목에 묶는 리본끈까지 완벽하게 재현한 것이었다. 새하얀 양말과 학생용처럼 보이는 깔끔한 구두 역시 갖춰 신었다. ‘안녕’과 ‘놀이공원’ 무대에서는 이 콘셉트를 약간만 변형했는데, 주름이 많은 스커트에 얇은 블라우스를 매치하는 식이다. 가끔 짧은 반바지나 야구점퍼 등을 착용하기도 하나 너무 스포티해 보이지는 않게끔 연출한다. 절대 배를 노출하지 않는다는 점까지, 온몸으로 ‘청순’을 외치는 듯한 스타일링.

여자친구: 청순함이나 연약함보다 먼저 내세우는 것은 건강한 이미지다. 스커트는 네 팀 중 가장 짧고, 그 위에는 후디나 선이 들어간 반팔 티셔츠를 입는다. 줄무늬가 있는 양말이나 흰 운동화도 기본이다. 판타지에 가깝긴 하나, 때로는 딱 붙는 체육복 같은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친근한 여자아이들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다.

오마이걸: 앞의 세 팀이 보여준 의상을 바탕으로 삼되, 그 안에서 최대한 귀엽게 입는 것이 목표인 듯 보인다. 블라우스와 짧은 스커트를 입고, 흰 양말과 흰 운동화를 신는 데다 팔에는 반드시 손목보호대를 한다. 레이스 디테일이 달린 맨투맨 티셔츠나 야구점퍼 안에 크롭티를 받쳐 입고, 발레복에 가까운 샤스커트를 착용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여고생보다 더 어설프고 풋풋하며 귀여운 여중생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 소녀들밖에 없는 뮤직비디오

남성들은 필요 없다. 아무리 사랑에 관한 노래라고 해도, 뮤직비디오만큼은 소녀들끼리 떠들거나 노는 공간에 집중해야 한다. 멤버들 외에 다른 여성들도 등장하지 않는다면 더욱 좋다. 소녀들만의 은밀한 세계를 보여준다는 느낌이어야 한다.

레드벨벳:
레드벨벳의 뮤직비디오 속 공간은 늘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다.‘행복’의 배경은 정글처럼 꾸며진 세트장이었고,‘Ice Cream Cake’는 미국 LA의 어느 지역에서 촬영된 것이었다. 세상 어딘가에 있겠지만 누구도 보고 경험하지 못한 장소는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거기서 레드벨벳은 드라이브를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도로 위를 뛰어다니면서 논다. 그리고 종종 카메라를 응시하는 멤버들의 시선 덕분에 뮤직비디오를 보는 이들은 그곳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러블리즈: ‘Candy Jelly Love’ 뮤직비디오의 배경은 학교였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교실, 햇빛이 반짝이는 체육관과 복도에서 러블리즈는 가위바위보로 사탕을 먹거나 잠든 친구의 얼굴 위에 사탕을 올려놓는 등 계속해서 엉뚱한 장난을 쳤다. 당연히 멤버들 외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출연하지 않는다. 한편‘안녕’ 뮤직비디오의 공간은 소녀들 각자의 방에 가깝고, 한 명씩 따로 떨어져 있는 멤버들의 모습은 풍선이나 곰인형과 함께라도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소녀들의 마음에 있는 그리움의 대상이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아니라, 서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여자친구: 보통의 남성들이 상상하는 여고생이 딱 이렇지 않을까?‘유리구슬’ 뮤직비디오에서 여자친구 멤버들은 팔짱을 끼고 웃으며 함께 등교하고, 수업시간이면 선생님 몰래 쪽지를 돌리다 들켜서 벌을 서기도 한다. 체육시간엔 친구의 응원을 받으며 뜀틀을 넘고, 점심시간엔 운동장 한구석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도시락을 까먹는다. 여고생활을 극도로 미화한 듯한 장면만 오려다 붙인 뮤직비디오지만, 바로 그래서 남성 팬들에겐 더 매력적으로 어필하지 않았을까.

오마이걸: 파스텔톤으로 꾸며진 예쁜 방. 귀여운 파자마를 입고 폭신폭신한 인형을 껴안은 채 오마이걸 멤버들이 잠들어 있다. 남성이 등장하긴하지만 멤버들과 러브라인이 있는 것은 아니며, 큐피드인 소녀들이 쏜 화살에 맞는 역할일 뿐이다. 더불어 달콤한 꿈에서 깨어 발그레해진 소녀들의 얼굴, 날개가 달린 샤방샤방한 천사옷과 흩날리는 깃털 등‘Cupid’ 뮤직비디오에는 약간은 간지럽게 느껴질 수 있는 설정들도 촘촘히 들어가 있는데, ‘오그라듦’의 중독성이야말로 강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파악한 것 같다.

3. 수줍은 듯 씩씩한 가사

무조건 아무것도 모른다고 내숭을 떠는 듯한 가사는 의외로 소녀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적당히 수줍어하면서도 결국은 사랑을 고백하고, 더 나아가 보호받는 존재이기를 거부하는 목소리야말로 소녀들의 것이다.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진다던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떠올려보라.

레드벨벳: 사실 수줍다고 하기도, 씩씩하다고 말하기도 어울리지 않는 미묘한 가사다. 차라리 도발적이랄까? 사랑에 빠져도 나의 매력을 자각할 뿐, 상대방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행복’은 “끼리끼리 모여 장난치던 남자애들 내가 지나가니 의식해서 좋고” 등 자기애를 드러내는 곡이었고, ‘Ice Cream Cake’는 사랑의 달콤함에 대해 노래하면서도 “넌 나를 바라봐 넋을 놓고 또 봐” 등 ‘멋진 나’에게 빠진 상대방의 심리를 읽어낸다. 한편으로는 사랑 역시 아이스크림 케이크처럼 내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를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만만한 구석이라곤 없는 소녀들.

러블리즈: 용감함을 타고나진 않았어도 닥쳐올일들을 피하진 않을 것 같다. ‘Candy Jelly Love’에서는 “우리 어디까지 갈는지 어떻게 될 건지 나는 몰라도 겁먹진 않을래요”라고 노래했으며, ‘안녕’에서는 고백이 쑥스러워 수화기를 들기까지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도 끝내 “저기 말야 내가 있잖아 널 많이 사랑해”라고 털어놓고야 마는 여자아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사랑 앞에선 주저하지 않는 소녀들이라니, 마음을 뺏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여자친구: 그야말로 씩씩하다. 유약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어필한다. 고백도 직설적이다. “사랑해 너만을 변하지 않도록 영원히 널 비춰줄게”라거나, “떨리는 그대 손을 꽉 잡아줄게요”라고 말한다. ‘유리구슬’ 혹은 ‘달빛에 반짝이는 이슬’ 등 깨끗하고 연약한 느낌의 단어들을 펼쳐놓으면서도, 한 번 더 비틀어 전형적인 소녀의 상을 깨버리는 것이다.

오마이걸: ‘큐피드’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 속에서 자주 차용되는 소재다. 그런데 오마이걸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묘사하기 위해 큐피드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빠지도록 주문을 건다. 수동적으로, 혹은 지고지순하게 누군가 선택해주기를, 좋아해주기를 기다리는 소녀들이 아니다. 특히 “사랑에 빠진 얼굴을 내게 보여줘요”, “그대는 내일부터 날 자꾸만 떠올릴 거야” 등의 가사는 오마이걸을 보고 있는 이들에게 거는 사랑의 주문 같기도 하다.

4. 웃는 얼굴과 힘 있는 안무

섹시함을 노골적으로 어필하거나, 귀여운 콘셉트라고 눈만 찡긋거리고 있으면 안 된다. 30초만 춰도 숨을 몰아쉬게 될 것 같은 파워풀한 안무를 추면서도 생글생글 미소를 잃지 않아야 한다. 무엇이든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야말로 소녀들의 진짜 매력 포인트이니 말이다.

레드벨벳:
‘행복’ 때는 쉴 틈 없이 무대 위를 뛰어다녔다. 반면 ‘Ice Cream Cake’에서는 골반을 꺾거나 힘 있게 튕기는 등 걸스 힙합에 가까운 안무들을 선보인다. 또한 아이린의 랩 파트에서는 나머지 멤버들이 바닥에서 구르다시피 하며 묘기라고 할 만한 춤을 소화하기도 한다. 노래는 더없이 사랑스럽지만, 대부분의 춤은 보이 그룹의 것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고난도다. 그렇다고 예쁘게 보이길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박자에 맞춰 순서대로 포즈를 취하거나,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달라는 듯한 포인트 안무만큼은 상상할 수 있는 걸 그룹의 안무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러블리즈: 하늘하늘한 옷차림과는 달리 상당한 ‘칼군무’다. 얌전한 소녀처럼 두 손을 등 뒤에서 맞잡거나 마무리에서는 치마를 잡고 다리를 살짝 꼬는 등 청순의 바이블 같은 안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동작이 크고 절도 있다. ‘Candy Jelly Love’ 무대에서는 게다리 춤과 비슷한 춤을 보여주었으며, ‘안녕’ 무대에서는 “헤이!” 하는 구호와 함께 팔을 위로 쭉 뻗으며 점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는 것만큼은 놓치지 않는다.

여자친구: 유리구슬을 만드는 듯한 안무조차 힘차게 할 정도로 모든 동작에 힘을 많이 싣는 편이다. “사랑해 너만을”에 맞춰서 팔을 앞으로 펼치며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킨다든지, 팔을 크게 돌려서 당기는 동시에 발을 구르는 등 팔다리를 잠시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무엇보다 저러다 뒤로 넘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발차기를 한다. 치마가 펄럭이는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박력 넘치게.

오마이걸: ‘Cupid’의 마칭 리듬, 그리고 다 같이 목소리를 모아 외치듯 부르는 후렴구 때문에 힘이 넘쳐 보이지만, 의외로 춤 자체는 딱히 과격하지 않다. 나팔 부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사랑에 빠져 세상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이는 상황을 묘사하는 정도다. 그 중간중간에는 어깨를 살랑거리거나 인사하듯 손바닥을 흔들고 손으로 입을 가리는 등 사랑스러운 동작들을 배치해놓았다. 고개를 옆으로 까딱 흔들고 윙크하는 마무리까지,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귀여움의 궁극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는 듯한 안무다.

5. 친구보다 가까운 멤버들의 관계

뮤직비디오나 무대뿐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소녀들의 관계는 중요하다. 자신들끼리 있어도 얼마든지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그래서 연애 같은 건 일단 관심조차 없어 보이는 게 중요하다. 특히 소녀들의 유난히 끈끈한 관계는 데뷔 초기 팬덤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이기도 하다.

레드벨벳: 4인 체제였던 ‘행복’ 활동 당시, 두 명씩 짝을 지어 손뼉을 치거나 “아휴착한 내 딸아”라는 가사에 맞춰 아이린과 조이가 포옹하는 안무를 선보인 바 있다. 덕분에 데뷔 초부터 팬들에 의한 ‘커플링’이 많았고, 서로 손을 꼭 붙들고 다니는 출퇴근길 사진 등으로 현실에서도 친밀한 멤버들의 관계를 증명했다. 때로는 카디건 하나를 두 사람이 함께 껴입은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한다. 컴백쇼케이스였던 [아이스크림TV]에서도 새 멤버 예리의 교복을 직접 스팀다리미로 다려주는 아이린의 모습을 노출하는 등 틈틈이 ‘우리 친해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러블리즈: 멤버들이 모두 모이면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시끄럽다. 네이버 스타캐스트를 통해 공개된 [러블리즈 다이어리]를 보면, 수다 떨기에 바쁘고 매사에 웃음을 터뜨리는 딱 그 나이대 평범한 여자애들 같다. 실제 여고생들처럼 두 명씩 짝을 지어 커플티를 사거나, 다른 멤버의 입에 묻은 음식을 자연스럽게 닦아주기도 한다. 누가 봐도 ‘남자친구 따윈 필요 없어!’ 같은 분위기.

여자친구: 러블리즈 못지않게 시끄럽다. 쉬는 시간이 되면 떠들면서 우르르 매점으로 몰려가는 여고생들 같다. 어디서든 서로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고, 생일이 똑같은 멤버 혹은 본명이 같은 멤버들끼리의 끈끈한 사이를 강조하기도 한다. 심지어 신비와 은하는 텔레파시 테스트에서 계속 똑같은 답을 내놓자 손뼉을 마주 치고 껴안으며 기뻐하기도 했는데, 소녀들의 영원한 우정을 바라는 팬들로서는 흐뭇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오마이걸:
아직까지는 멤버들의 관계를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음악프로그램의 백스테이지 영상이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오는 이미지들도 개개인의 캐릭터와 이름을 각인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차츰 리더와 막내가 함께 찍은 사진을 게재하는 등 ‘조련’을 시도 중인 만큼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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